서울신문. 인터뷰 “빛도 그림자 받쳐 줘야 빛나요”…

2022.06.14 23:17

향기소리도우미

조회 수1810

서울신문 인터뷰 2022년 6월 15일자 기사입니다.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615026010&cp=seoul&section=life&wlog_tag1=mb_seoul_from_section



“빛은 그림자가 받쳐 줘야 빛나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똑같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애를 써도 못 만난다는 ‘시절 인연’ 이야기를 종종 했다. 시절 인연은 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사람과 물건이 적절한 때를 만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도 다 시절 인연이다.

어느 날 법정 스님은 자신이 쓰던 필름카메라를 맏상좌인 덕조 스님에게 건넸다고 한다. 불쑥 찾아온 인연은 덕조 스님과 잘 맞았고, 그 인연으로 그는 여전히 사진을 잘 찍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동안 불교방송 ‘아침을 여는 덕조 스님의 향기 소리’에서 보냈던 문자들과 틈틈이 찍었던 사진을 모아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그대에게’(김영사)를 출간했다. 7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책으로 첫 책에는 없는 드론 사진까지 들어가 눈길을 끈다.


 
최근 전남 순천 송광사의 산내 암자 불일암에서 만난 덕조 스님은 “카메라를 받은 지 30년도 넘었다”고 회상했다. 평소 다양한 예술을 즐겼던 법정 스님은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예술을 즐기는 데 필요한 물건마저 ‘무소유’를 실천했고, 그 덕에 카메라가 덕조 스님에게 오게 됐다. 덕조 스님이 꺼낸 카메라에는 법정 스님이 쓴 스티커 글씨가 남아 원래 주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왜 줬는지는 따로 묻지 않았지만 은사에게 카메라를 받은 제자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늘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법정 스님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법정 스님은 사진 찍히는 것을 불편해했지만 덕조 스님이 찍는 것은 의식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가까이서 오래 찍다 보니 미공개 사진도 여럿이다. 아직은 시절 인연이 닿지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공개할 계획이다.

이번에 낸 책에는 송광사와 불일암의 사계를 비롯해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이 들어갔다. 덕조 스님은 “책은 내가 혼자 보는 게 아니라 결국 독자들이 보는 것”이라며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진과 편집자가 좋아하는 사진이 다를 수 있어 사진 선택은 전적으로 편집자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무아(無我)가 된 저자가 욕심을 내려놓은 사이에 선택된 사진들은 문장 못지않게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사진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사진승(僧)은 결코 아니라지만 덕조 스님은 2005년 제1회 템플스테이 사진전 금상 수상자이며, 2016년 인도 남부의 수행 공동체 오로빌에서 ‘송광사의 사계’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을 정도로 솜씨가 남다르다.

장르마다 쓰는 렌즈도 다양하고, 포토샵도 다룰 줄 안다. 찍은 사진이 워낙 많다 보니 외장하드도 따로 있다. 입체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드론까지 장만해 가끔 띄운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눈 온 송광사를 드론으로 담은 사진이 들어갈 수 있던 이유다.

덕조 스님은 찰나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고, 빛과 그림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사진을 인생에 빗댔다. 책에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그는 “꽃이 피려면 씨앗을 심었을 때 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처럼 사진도 준비를 다 하고 있다가 찰나에 딱 조건이 맞아야 완벽한 사진이 된다”면서 “전체가 다 밝다고 해서 좋은 사진인 것은 아니다. 빛은 풍족함이고, 그림자는 삶의 과정이고 고통인데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는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조화로운 인생을 당부했다.
 
글·사진 순천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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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평등심 딸

2022.06.16 04:49

이곳, 그리고 스님과의 인연의 시작도 사진이었네요. 모친이 필요하시다는 초전법륜지의 구도 좋고 화질 좋은 사진을 찾다 오게 되어, 사진 사용 허락받아 편집하던 중 뒤늦게야 “법정스님 상좌스님이시라는데? 근데 상좌스님이 뭐예요?” 이때 당시 제 인식은 법정스님은 모친이 맨날 불교방송 지켜 앉아 법문 들으시는 스님, 그리고 돌아가셨을 때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신 스님이시라는 딱 그 정도였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모친 말씀이 너는 정말 법정스님 법문 들어야하는데, 매일 밭에 나가 살고 잠깐 법문 들을 시간을 내지않으니, 집에 눌러앉아 법문 들으라고 하시는 거라고.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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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심 딸

2022.06.18 00:53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는 법정스님 법문을 들으며, “아, 그래, 그렇구나.”하다가 문득 “어? 이 이야기, 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데?”하였습니다. 35년 전에 법정스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단, 그때는 “맞아, 맞아”하며 읽다가 정작 무소유란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읽고는, 엄청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는 겁니다, 그때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해서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부질없고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35년이 걸렸구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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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심 딸

2022.06.18 00:58

조부 유택의 기와가 어그러져 매년 보수를 하는데도 계속 물이 샙니다. 빈집일 때는 버텼지만 기거를 하게 된 작년 여름부터는 노모 건강도 걱정되고 누전 위험도 문제라서 비올 때마다 4-5군데 그릇받쳐 놓고 지낼 수는 없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도기와라 같은 가마에서 한번에 같이 나온 기와가 아니면 조금씩 규격이 달라져 하자가 나는 거라고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집전체 기와를 다 바꿔야하는데, 그마저도 기존 도기와 회사가 폐업을 했으니 저렴하게 하려면 시멘트 기와로 하라는 겁니다. 비용도 문제지만 몇십장이 부족해서 거의 집전체 기와를 폐기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와서 법정스님이 보셨으면 마뜩잖다 하시겠다며 천장을 노려보며 잠을 청하다 문득 기존 기와를 전부 내려 규격 맞는 것으로만 3면을 잇고 나머지 한면만 같은 색의 시멘트 기와로 이으면 되겠다 싶더군요. 전체가 같은 기와면 좋겠지만, 이런 상횡에서 같은 기와를 고집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취하려는 것에 해당된다 싶었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를 납득하는데 35년이 걸린 결과, 그간 부질없이 소유한 수많은 것들을 잘 떠나보내고 인연을 풀어내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하는 것이 딱하지만 이제라도 더 늘이지 않는 것에 용기를 내자 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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