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과 돈이야기 / 법정스님(2009.3)

지난 동안거 해젯날 법회에서 저는 시간의 덧없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마치 모래를 한 움큼 쥐었을 때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 나가듯 하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해제 법문 끝에는 오늘이 맺은 것을 푸는 해젯날이니 한 가지 곁들이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10년 전 이곳에 처음 절이 만들어졌을 때는 여러 가지로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여러 불자들의 신심어린 정성과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절을 운영하는 소임자들의 피나는 노고의 덕으로 길상사는 오늘과 같은 번듯한 도량이 되었습니다. 지장전과 식당이 세워지고 설법전과 종각과 정랑(변소)이 정비되었습니다.

이 절을 만들 때 가난한 절을 내세웠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가난한 절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겉치레는 그만하고 맑고 향기로운 도량답게 내실을 다져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법문을 하고 나면 그 끝에 으레 불사를 내세워 돈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때마다 저는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물론 절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부득이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불사에 대해서 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달라져야 합니다. 길상사의 경우는 달마다 나오는 소식지가 있고, 일주문 쪽에 게시판이 있어 거기에 알리면 됩니다. 이런 경로를 통해서 불사를 알리면 신성한 법회를 돈이야기로 먹칠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돈이야기를 꺼내어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하니 듣는 쪽에서는 두 사람이 미리 짜고 하는 수작 같아서 부담과 불쾌감을 동시에 갖게 될 것입니다.

모처럼 절에 와서 그동안 쌓인 짐을 부리고 싶었는데 도리어 짐을 지고 가는 편이 된 것입니다.

법회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법다운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그날 들은 법문의 내용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하는데, 법문 끝에 바로 돈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법회와 법문에 대한 모독이고 결례입니다. 이런 일은 이 절뿐 아니고 어느 절, 어느 교회 할 것 없이 상식화되고 인습화되어 있는데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경제적으로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쫓겨나고 일자리가 없어 살길이 막막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는 절이나 교회도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곳은 절도 교회도 아닙니다. 세상의 형편이 풀릴 때까지는 불사도 일단 중단되어야 합니다. 종에 금이 갔더라도 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종으로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종소리에 얼마만큼의 염원이 담겨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 나이도 있고, 건강도 그전만 못해 이런 자리에도 자주 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동안 마음에 고인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제가 한 말을 고깝게 듣지 말고 또 다른 법문으로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제 개인의 이야기를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재작년 겨울 신병을 치료하는데 제가 지닌 돈만으로는 모자라 부득이 사중(길상사)에서 치료비의 일부를 빌려 썼습니다. 그 때 진 빚을 해제 사흘 후인 2월 12일 몇 사람이 입회한 자리에서 갚았습니다. 빚을 갚고 나니 이제는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동안 내 치료비로 인해서 사중에 많은 신세를 지게 된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힙니다.

글 / 法 頂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