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손잡이는
내 안에 있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덕조 스님

취재. 장지해 편집장

‘무소유길’.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오르는 산길을, 사람들은 이제 그렇게 부른다. 법정 스님이 열반한 지 올해로 11년. 무소유길을 따라가면 도착하는 불일암에는 여전히 법정 스님의 정신이 맑게 살아있다.
“스님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저는 여전히 스님을 모시고 살아요. 많은 분들이 법정 스님을 느끼기 위해 불일암을 찾아오는데, 제가 도량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건 법정 스님이 도량 관리를 소홀히 하시는 게 되겠지요? 현재 불일암의 모습을 통해 그 정신이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량을 열심히 가꿀 수밖에 없어요.” 송광사 불일암 암주, 그리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덕조 스님의 말이다.
그는 ‘상좌는 두지 않겠다’던 법정 스님이 받아들인 첫 제자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큰 절(송광사)로 뛰어 내려가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의 파격이었다. “법정 스님께서 스승이신 효봉 스님이 직접 삭발을 해주신 게 너무 좋아서 종로 한 바퀴를 뛰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딱 그 기분이었어요.(웃음)”
덕조 스님은 최근 법정 스님의 미발표 글들을, 10년여 만에 조심스럽게 하나씩 열어 세상에 보이는 중이다.

● 최근 법정 스님의 35년 된 미공개 유고가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절판 하라’고 유언하셨는데 왜 책을 내냐고 시비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런데 ‘절판’이라는 문구 하나에 걸려서 세상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글들을 사장시키는 건 스님의 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요. 물론 매우 조심스러웠고, 개인적으로는 욕먹을 각오도 했어요. 욕먹는 걸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최근 발간된 법정 스님의 <진리와 자유의 길>은 35년 전 법정 스님이 송광사 수련원장일 때 직접 쓴 수련 교재다. 누군가는 이 원고를 보고 ‘박물관에 보관하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덕조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법정 스님이 생각하는 불교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담은 내용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의 수익금은 전액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로 들어가 마음공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환경 운동에 쓰인다.

● 월간 <맑고 향기롭게>에도 법정 스님의 새 글이 실리고 있는데요.
“세상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글과 말씀이 많은데, 굳이 한 번 공개되었던 글을 반복해 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 월 스님께서 새 글과 새 원고를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우리도 늘 새로운 글을 읽는 게 되고, 생전에 하셨던 말씀도 편집과 정리를 통해 전하면 새로운 말이 되니까요. 과거에 쓰고 말하셨지만 워낙 시대를 앞서 있어서 현재에 대입해도 힘이 돼요.”

세월이 흐르면서 책이 절판되어 법정 스님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짐을 실감한 덕조 스님은 지난 10년여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법정 스님의 정신을 어떻게 다시 이 시대에 전할지가 요즘의 화두다. 법정 스님의 미공개 글과 말을 세상에 열어 보이는 것을 그는 ‘다시 모시는 법정 스님’이라고 표현했다.

● 불일암에서는 어떻게 생활하시나요?
“스님을 모시고 살고, 스님이 살아왔던 스케줄 그대로 살아요. 자는 시간에 자고, 예불하는 시간에 예불하고, 공양하는 시간에 공양하고, 울력(작업)하는 시간에 울력하면서요. 다만 큰 절과 떨어져 살 뿐이죠. 나무도 날라야 하고, 불도 떼야 하고, 마당도 쓸어야 해서 반 아날로그적 생활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일이 많아요.”

불일암에는 그의 상좌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때 상좌와 어떻게 같이 사느냐”는 질문도 더러 받는다는 덕조 스님. 하지만 그는 스승과 자신이 그랬듯, 함께 살아야 서로에 대해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알면 오해할 일이 없고, 오해하지 않으면 사랑이 된다며 웃는 덕조 스님이다.

● 길상사는 도심 속 절인데도 숲 같은 느낌입니다.
“누가 그러던데, ‘서울 시민이 자랑하는 길상사’라고요.(웃음) 법정 스님께서 특정 종교인만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올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자고 하셔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멀리 가지 않고 여기만 와도 숲을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곳곳에 ‘우리꽃’이 심어져 있어요.”

안 그래도 인터뷰 전 절 내를 한 바퀴 돌며 ‘우리꽃이 피고 있어요’라는 팻말을 보고 ‘우리꽃이라는 종이 따로 있나?’라는 의문을 가졌던 터.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토종 우리꽃이 가득 심긴 풍경이 더 특별하게 와 닿는다.

●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길상사가 신앙을 담당한다면, 맑고 향기롭게는 대사회적 역할을 해요. 절에서 다 할 수 없는 일을 맑고 향기롭게를 통해 회향하는 거죠. 종교는 정체되면 부패하기 쉬운데, 맑고 향기롭게가 있어서 세상과 소통·순환하고 있어요. 실천 덕목인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에서 마음은 우리들의 수행, 세상은 이웃, 자연은 환경을 말해요.”

길상사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낯익지만 조금 특별한 보시 공양물이 있다. 그건 바로 즉석밥. ‘불전 헌공 후, 복지 취약계층에 회향됩니다’라고 쓰여 있는 문구 덕분일까, 부처님에게 보시함과 동시에 현실의 누군가를 돕는다는 의미가 한꺼번에 다가오면서 선뜻 마음을 내게 한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급식을 직접 못하게 되면서 의식을 변화한 일면. 공양물에 대한 의식 변화 역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한 모습이다.

● 수행길을 걷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부처님도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돌아가셨어요. ‘길’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내가 그 길을 감으로써 생긴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생각과 마음에도 길이 있어요. 귀를 열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만 귀를 닫으면 세상소리가 들리지 않고, 길 위에서 생각을 비우면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만 다른 데 몰입하면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해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열면 천하를 수용하고도 남지만, 닫아버리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죠. 마음의 손잡이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어요. 내가 열어야 열려요.”

●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무소유’라는 단어 자체에만 걸리면 시비만 많아져요. 스님께서 정의해주셨듯, 진정한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에요. 하나만 가지면 될 것을 우리는 두 개 세 개 가지고 싶어 하면서 과하게 쟁이고 사는 게 많아요. 소유지족(所有知足)하면 한 개도 많아요. 탐욕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에요. 법정 스님께서 이야기한 무소유는 검소하게, 소박하게, 간소하게, 요즘 말로 ‘심플하게 살라’는 가르침이에요.”

● 종교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종교가 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종교 때문에 오히려 많은 갈등과 서열이 생기고 있잖아요. 종교가 없는 곳이 오히려 수평적인 것 같아요. 템플스테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불교를 믿으라고 하지 않듯, 종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쉬고 힐링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게 만드는 곳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과 소통하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강조하는 덕조 스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그러기 때문에 ‘나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들 역시 나아가는 과정은 다르지만 근본 목적과 뿌리가 같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 평소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말씀을 전해주세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좋아해요.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주인처럼 살아야 해요. 내가 주인으로 살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해관계에 끌리면 당당할 수 없게 되죠. 이해관계에 걸리지 않아야 소신껏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주인공이 되라는 ‘수처작주’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살아요.

●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은 수행자들이 자유로워지려고 출가를 하죠. 그런데 ‘출가’가 뭔가요? 출가하고 싶다는 분들 중에 ‘정리하고 올게요’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 보기가 어려워요.(웃음) 출가는 정리대상이 아니에요. 하나를 치우면 하나가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정리가 되겠어요? 다 놔두고 내가 통째로 빠져 나와야 정리가 돼요.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그 감정에서 내가 빠져나와버려야 정리가 되고 자유로워져요.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저는 ‘깨달음’의 현대적 표현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깨달음’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려운 경지 같은데, 그걸 ‘행복’이라고 표현하면 쉽게 이해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장 큰 깨달음은 곧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행복이죠. 있다가 사라지고 없다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맑고 흐린 자체가 없는 그 자리’가 가장 큰 행복이자 가장 큰 깨달음의 모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