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 바른 신행>

안녕하세요? 하늘도 푸르고 날씨도 한결 시원해진 것이 이제는 완연히 가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요즘 TV 연속극 많이 보시죠? 프로 중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프로가 있지요? 신문에 보니까 이 프로에 아름다운 클래식인 영화 미션<가브리엘 오브에>, 로시니의<윌리엄텡 서곡>, 피아졸레의<리베르탱고>, 오펜바흐의<재클린의 눈물>, 베토벤 교향곡9번 제4장의 <환희의 찬가(합창)> 연주된다고 합니다.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 팍팍한 우리들의 삶에 영양분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여러분이 길상사 법당을 찾아오신 것은 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듣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고자 이곳에 오신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바른 믿음과 바른 이해를 통한 바른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위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실천과 깨달음을 전제로 합니다.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교와는 동떨어진 신앙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종교입니다. 바른 신행을 위해서는 바른 지식을 얻어야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올바로 공부함으로써 올바르게 믿을 수 있고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구경에 보면 “잠 못 드는 사람에게는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의 밤길은 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듯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불교는 동떨어진 세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지난달 티벳의 법왕스님께서 이곳 길상사에서 관정법회를 보시고 흐뭇한 마음으로 기회가 되면 내년에도 오실 마음을 내시고 가셨습니다. 법왕스님께서 불자님들의 환희의 마음과 기뻐하는 모습을 가슴으로 느끼신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감상을 여쭈었더니 대다수가 불자인 일본보다도 훨씬 나았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이곳 길상사 신도님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관정법회에 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불심이 법왕스님을 감동시킨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 어떤 이는 조금, 어떤 이는 아주 많이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 만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서로 알맞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만큼 받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닙니다. 사랑은 할 수 있는 한 한껏 하는 것이고 줄 수 있는 한 한껏 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한껏 사랑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좀 더 사랑할 수 없었든가? 좀 더 베풀 수 없었던가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사랑은 베푸는 것이라기보다 사랑은 바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 여유로움을 떼어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낮추어서 상대방을 받드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내가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내가 얼마나 겸손한 자세에서 그를 높이고 얼마만큼 진심으로 그를 위해 내 것을 버렸는지를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변해야합니다.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몸을 낮추고 내 생각을 낮추어야만 됩니다. 우리들의 영혼을 구하고 새 삶을 위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추어야 됩니다. 변화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불변의 사고들을 지니면서 다른 사람이 그 사고들을 건들이면 자존심을 상해하고 기분 나빠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내가 지닌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나를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받는 상처인 것입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를 먹고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 자신이 여유롭고 온화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나”라는 것에 집착하여 남을 탓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길을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쳤을 때 이는 누구 잘못입니까? 대부분이 전봇대를 탓합니다. 그렇지만 전봇대는 나보다 먼저 그곳에 서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부딪혀 놓고 전봇대 때문이라고 합니다. 흔히 가정문제에서 보면 자식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왜 자식 때문입니까? 그 자식은 누가 낳은 것입니까? 자기가 낳아놓고 자식을 탓합니다. 그런가하면 자식이 잘되면 자신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문”과 “덕분”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자식 덕분에 행복할 수 있고 아내나 남편 덕분에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자식과 남편, 아내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살다보면 자신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얼마 전 “KBS다큐3” 라는 프로에서 주문진항에 대한 72시간 촬영한 것을 보았는데 어부생활을 밀착 취재한 프로였습니다. 그곳 어부들은 굉장히 고달프고 힘들게 살고 있었지만 그분들은 무척 즐겁고 희망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기름 값이 비싸서 만선하지 않으면 마이너스인데도 절망하지 않고, 또 조그만 통통배로도 매우 행복하게 사는 어부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어부들은 자기는 이 정도의 만족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과 비교해서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불행하고 못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 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더 마음이 너그럽고 여유로워 야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하고 돌이켜보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다르더라도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잘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서로 맞추어 살면 됩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커지는 순간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행동과정으로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예물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배려는 무엇을 통하여 그렇게 되는 것인가? 배려는 먼저 자기 극복부터 시작됩니다. 자기극복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절하는 것은 하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가장 흔하게 만나는 사람은 아직도 자기생각만이 머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차서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머리는 건강하지만 언제나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식사 한 끼라도 먼저 먹으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배려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은 30Cm밖에 안 되지만 생각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30년이 걸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머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자신만을 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극복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배려야말로 인간관계를 이끌어주는 윤활유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살고 있습니다. 부딪치는 삶에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관계를 통한 인연법에서 서로 만나고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관계는 소금과 물과 같은 관계입니다. 소금과 물은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잦은 만남과 이별하지 않고 고귀한 만남으로써 둘은 빈자리를 채워주기를 원하는 그런 아주 사이좋은 부부와 같은 관계입니다. 서로는 언제나 함께 있어서 식탁위에 간을 맞추어주는 상호보완관계입니다. 만남이 싱거우면 소금이 되어주고 짜면 물이 되어 서로의 영혼까지 아름다운 물과 소금의 만남은 우리들의 만남이라 생각하십시오. 그 존재가 언제 어디서 만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웃들을 위해 우리는 배려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도하고 증진하고 수행하는 이유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마을에 한 명의가 있었는데 워낙 병을 잘 고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그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세월은 무상해서 그 명의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그 의사를 찾아가서 울부짖습니다. 이제 우리의 병은 누가 고쳐줍니까? 하고 하소연하자 그 의사는 간신히 힘을 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보다 훨씬 훌륭한 3명의 명의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 의사의 이름은 음식과 수면, 그리고 운동입니다.” 가벼운 음식, 깊은 잠과 적당한 운동은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중의 의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보다 훨씬 중요한 영혼과 건강을 지켜주는 명의가 있는데 그 분은 바로 기도와 사랑입니다.” 우리들을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기도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기와 비교하는 것은 사람의 건강을 갉아먹은 벌레와 같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넓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우리 영혼의 건강을 지켜주는 양약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힘들어하십니까?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때에 내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나를 벗어나세요. 내 아집과 집착과 욕심에서 자유로워져야합니다. 많이 가질 수 있지만 이웃을 위해 조금만 부족한 듯이 마음을 비울 수 있고, 욕심을 부려서 만족할 수도 있지만 이웃을 위해 조금만 덜 채워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내 생각보다도 남을 위한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빨리 성취된다고 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득이 되고 보살같은 모습으로 화현해서 존재했을 때 “아! 바른 생활을 하면 저런 모습으로 변하는 구나”하는 표본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길상사에서 바른 신행을 통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졌을 때 다른 분들도 희망을 가지고 이곳 길상사로 와서 기도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바른 신행은 바른 예의와 바른 믿음과 바른 실천을 통해서 바른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이 좋은 가을 시월상달에 좋은 음악과 함께 눈을 즐겁게 하시고 돌아가셔서 즐거운 날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한 날들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52년 9월 29일 德祖(주지)스님- 9월 초하루 법문/知愚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