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삶의 지혜>

날씨가 춥우시죠? 겨울이라 추운 겁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잖아요. 겨울은 겨울다워야 겨울이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여름인 것입니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으면 계절 감각이 없어지겠지요. 겨울이 있어야 병균들이 죽고 봄이 오면 새로운 꽃이 더 아름답게 핍니다. 사계절이 따뜻한 곳에 피는 꽃은 예쁘지만 향기가 없습니다. 이처럼 춥고 어려운 가운데서 견디는 사람들이 더 강건하고 향기롭습니다. 조금만 추우면 춥다고 야단인데 추위가 없으면 따뜻함도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습니까? 올해는 크리스마스캐럴이 많이 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의 성탄절이지만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날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캐럴송이 줄어든 이유가 저작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메마른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경제논리에 밀려 음악도 마음대로 못 들을 정도로 세상이 각박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명동이나 청계천 같은 곳에서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가까운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작은 형제수도원), 덕수교회, 성가정 입양원, 성북동 성당 등 4군데를 인사하러 갔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쪽 분위기도 움츠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보였습니다.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앞으로 2년은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면 그 말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이번 위기는 세계의 금융전문가들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년 동안 대공황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태유발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파동이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25년 동안의 미국 발 주택거품 현상으로 인해서 초래된 세계적 금융위기가 소비둔화, 실업증가, 소비위축의 악순환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이어져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한집안입니다. 미국 따로 우리 따로가 아닙니다. 같이 어울려 돌아갑니다. 지금의 상황은 헬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침체를 막아야한다는 디프레이션을 전문가들을 더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물가는 내려가고 실업률은 높아져서 2차 대전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사람들은 가장 먼저 시장경제는 시장에 맡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누가 했습니까? 미국이 했습니다. 신자유주의란 것은 정부가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장점과 함께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입니다. 약육강식의 미국식 경제방식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미국 때문에 온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이 실패한 경제정책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은들 무엇 합니까? 그 이면에 탐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항상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 경제란 돈을 벌면 내 돈이고 실패하여 돈을 잃으면 구제금융을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소유욕과 시장의 불안정성이 결국 오늘날의 금융위기를 자초한 것입니다. 제도의 모순과 인간의 탐욕심이 일으킨 이 금융사건이 오늘의 사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나라를 끌고 가는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분을 우리가 신뢰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신뢰성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미네르바’라는 익명의 논객이 나타나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 논객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신뢰성을 잃어버릴 때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설득하고 이해를 시켜야합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믿음을 주어야합니다. 믿음을 얻지 못하면 설득을 해야 합니다.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모두가 불신하고 불 안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언이란 무엇입니까?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맞을 확률보다 틀릴 확률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어려울수록 예언하는 자들이 많았고 신비주의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예측은 대부분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싶어 합니다. 왜냐면 불신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시한부 환자일지라도 살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당신은 암에 걸렸으니 죽는다고 단정해버리는 격입니다. 지금의 사회현상이 그렇습니다. 모든 매체의 뉴스에서 이 연말에 따뜻한 보도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이웃을 돕자 거나 나누자는 얘기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올 년말에는 그런 말이 별로 없습니다. 계속 어렵다고 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그러다보니 환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희망을 주는 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희망이란 믿음을 거울삼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믿음이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데 우리의 뇌는 믿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신체는 그 믿음이 사실인 것처럼 따라서 작동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목이 마르거나 기가 막히고 병이 나거나 건강을 잃을 경우에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자신들이 암 세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알기 이전까지는 암환자가 아닙니다. 알고부터 암의 환자가 되고 당신은 언제까지 죽을 것이라고 하면 그렇게 죽습니다. 이것이 말의 위력입니다. 어떤 말을 들어서 믿게 되면 믿고 기대하 는 방향으로 몸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자신들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말하자면 거품을 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위선적인 거품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까? 일본이 주택거품이 빠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불황을 가졌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나라에도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거품은 거품일 뿐입니다. 지금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거품은 철저히 빠져야 만이 정상으로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인생의 거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고인이 된 최진실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가 CF한편에 출현해서 받는 돈이 5억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자기가 가져가는 돈은 몇 푼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은 굉장히 많은 돈을 갖고 있을 줄 알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다지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의 거품은 허명입니다.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실속 없는 헛된 명성은 자신에게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우리도 그런 쓴잔을 마시지 않으려면 우리의 모든 거품을 빼고 단순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단단히 마음먹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신도 모르게 채워둔 수많은 거품들을 빼어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생활습관에서 탈피해야 됩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하지 않을수록 자신이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자신과 주변여건이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는데도 변화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뒤처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의 IT산업이 변화하고 있습니다.‘더 작게, 더 가볍게’이런 흐름 앞에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도태를 의미합니다.

심장병 수술 받은 환자에게 의사는 이런 진단을 내립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충고를 합니다. ‘만약에 이 충고를 받아들여서 변화하지 않으면 죽든지 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이렇게 경고를 내립니다. 이 경고를 받은 후에도 조사를 해본 결과 겨우 10%만 변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귀담아 듣지 않고 결국은 자기식대로 살다가 얼마 못가서 죽은 것입니다. 의사 말대로 운동과 식이요법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인데도 그걸 하지 않고 변화를 거부하다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경제는 심장병 수술을 받은 사람과 똑 같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불황이 오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소비 패턴도 변하고 성향도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보수적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를 구실삼아 국민을 옥죄고 있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나눈다면서 기존 종사원들을 잘라내고 모두 일용직 고용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같이 나눠야지 왜 퇴출시켜야합니까? 월급을 줄여서 같이 사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 개인의 가정파탄은 없습니다. 고용창출을 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라 국민들이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백수 때보다도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왜 일까요? 업무성과에 대한 압박감, 원만한 대인관계가 각박한 도시의 사회생활과 유연성의 경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 적응하지 못함으로서 백수 때의 스트레스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잔잔한 호수주변의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우울증이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은 평온할 때 보다 북적거리는 변화무상한 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숫가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무미건조 합니다. 편안하고 잔잔하지만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오는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내 삶의 변화를 불러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변화를 시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보면 권위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인생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선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영화에서 선생님이 책상위에 올라가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책상위에 왜 올라갔는지 알아?”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었어. 너희들도 한번 책상위에 올라와 봐. 어떤 사실을 알려면 다른 시각에서도 보아야만 돼. 바보 같고 틀린 것처럼 보여도 다른 시도를 해보아야 돼.”그런데 아이들은 책상위에 올라갈 생각을 못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도 아무도 책상위에 오르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변화를 한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보면 모든 학생이 다 책상위로 올라갑니다. 놀라운 변화의 장면입니다. 우리들도 모두 이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큰일도 아닌데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망설임, 주저함, 우유부단 등에 변화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변화가 두렵기에 그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다 가는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길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있는 것입니다.&nbsp;사람들은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생각을 제한하고 인생을 소극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시도하지 않는 자체가 인생의 오점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와 부잣집에서 좋은 환경으로 인격적으로 가족을 돌보며 행복을 주었던 성실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족을 잘 돌보던 성실한 아버지가 한번 실수로 바람을 피었습니다. 성실한 아버지는 가족의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반성하며 삽니다. 그런데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는 성실한 아버지가 바람피운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한 번도 바람을 피운 적이 없는 깨끗한 아버지”라고….. 과연 어떤 분이 훌륭한 아버지일까요? 무능하지만 한 번도 바람피우지 않고 가족이 고통스럽게 사는 가정도 있고 유능하지만 한번 저지른 실수를 반성하고 가족한테 잘하고 사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나을까요? 가치기준에 따라 각자의 답이 다릅니다.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고정 불변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다하더라도 금년 연말에 이웃돕기 자선남비의 모금액이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금년이 그렇게 어렵다고 야단인데도 모금액이 무려 12억이나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디 한곳에는 누군가가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상사 해우소 불사를 하는데 얼마전 기초교리, 경전반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은 분이 천만원짜리 수표를 보시했습니다. 그런 분이 계시는 한 길상사 불사는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어딘가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다를 썩지 않게 하는 것은 3%의 소금이라고 합니다. 이 3% 때문에 우리가 바다를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가 연구한 데이터를 보면 우리들의 행복의 수치그라프는 "U"자 형이라고 합니다. 가장 불행한 시기가 나이로 볼 때 40~50대라고 합니다. 어릴 때 행복했고 나이 들어서는 대부분이 행복하다고 했답니다. 80개국 2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통계라고 합니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이 모두 같은 그래프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이 탓으로 돌려야합니다. 40대가 되면 남녀모두가 우울해지고 여성 쪽이 더 불행을 느낀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누는 일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고통 받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일수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고통이 힘들지만 기도를 통해서 고통의 극복이 가능한 것입니다.

바다에 폭풍을 만난 배 한척이 난파하여 배에서 살아남은 두 사내가 외딴섬으로 헤엄쳐가서 살았습니다. 간신히 살아난 두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다가 신에게 기도를 해서 이 난관을 벗어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이 서로 누가 더 신심이 강한지를 기도를 통하여 시험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양쪽으로 갈라서서 기도하기로 합니다. 한사람은 오른 쪽, 한사람은 왼쪽으로 향해서 기도를 하는데 제일 먼저 우선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답니다. 이튿날 오른쪽 사내가 오른쪽에서 열매 맺은 나무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왼쪽 사내는 아무런 혜택도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 두 사내는 다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아내를 얻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에 배 한척이 난파되어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 한사람이 오른쪽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른쪽사내가 여자를 차지합니다. 그 여인은 물론 오른쪽 사내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두 사내는 다시 기도합니다. 자식과 집과 의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오른 쪽 사내가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사내는 자신의 가족과 모든 식구들이 이 섬을 벗어날 수 있는 배 한척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다음날 배 한척이 가까운 해안에 밀려옵니다. 오른쪽사내는 왼쪽의 친구를 남겨두고 섬을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왼쪽사내는 처음부터 끝가지 아무런 영험이 없었습니다. 축복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른쪽사내가 가족을 배에 태우고 떠나려 하는데 천상에서‘너는 어찌하여 네 동료를 두고 떠나려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른쪽 사내가 ‘내가 받은 축복은 내가 빌어서 받은 것이니 나 혼자 누려야할 복입니다.
저 친구는 기도해도 아무런 영험이 없고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으니 축복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두고 가도 되지 않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천상에서 ‘헛소리 하지 말아라! 네가 기도한 기도는 바로 저 사람의 기도이니라. 그의 기도가 없었던들 너는 지금 아무런 축복도 어떤 것도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오른쪽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따집니다. ‘내가 해서 한 것을 저 친구가 무슨 기도를 했기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까?’그러자 천상에서 ‘저 친구는 너의 기도가 모두 모두 이뤄지기를 기도 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친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친구의 덕분으로 네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지 네 기도의 덕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순간순간 이뤄진 것이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잘해서 이뤄진 걸로 알지만 실제로는 모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아 이뤄진 것임을 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도 내가 이웃을 위해 하는 기도가 훨씬 잘 이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내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탐욕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남을 위해하는 것은 베풂인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우리들은 서로 베풀어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따뜻하고 이웃이 따뜻하고 행복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렵다고만 가슴을 조이고 위축된다면 이 세상이 정말 어려워집니다. 어려울수록 검소해야 됩니다. 거품은 빼야 되지만 우리가 쓸 것은 써야 됩니다. 주머니 안에 숨겨진 돈은 돈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서로 나누는 삶입니다.

어떤 슈퍼마켓카운터에서 일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밤 12시가 되니 어떤 청년이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진열대에 놓인 물건을 막 뒤집니다. 그리고는 기간이 지난 빵을 고릅니다. 그리고 카운터에 가서는 “이것은 기한이 지난 것”이라고 하며 계산하지 않고 도망 가버립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쫓아가서 골목에 숨어있는 청년을 잡습니다. 청년이 놀라서 말합니다. “할아버지 이것은 유통기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먹어도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청년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합니다. “유통기간이 지난 빵을 먹기에는 우유가 필요하지 않겠니?”하면서 우유를 줍니다. 그러면서 “이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고,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단다. 이것을 같이 먹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유통기간이 없습니다. 나눔에도 유통기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같이 나눠줘야 할 사람들이 이 순간순간을 기다리는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어렵다고 마음을 닫지 마시고 어려울수록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우리주변에는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어렵다고 하니 우리의 마음이 움츠려 들고 가슴이 다 닫혀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입니다. 따뜻한 말, 가슴 훈훈한 일들도 많은데 부정적인 말들만 하니 모든 것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렇고 계속 어려운 것입니다. 이럴수록 우리자신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52년 12월 27일 德祖(주지)스님 초하루 법문 중에서/知愚정리-